이재철 전 고양부시장. 사진제공-오산희망연구소
이재철 전 고양부시장. 사진제공-오산희망연구소

이재철 전 고양부시장은 정년을 4년 남기고 명예퇴직했다. 그는 지난 4년간 공직생활을 이어오면서 “공직에 대한 회의감으로 번 아웃됐다. 내가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바른정치'를 하기 위해 퇴직했다”고 했다. 공무원직을 유지했다면 그는 행정부지사(1급)가 될 수 있었고, 퇴직 후 안정적인 삶을 이어갈 수도 있었다. 진보성향이라고 밝힌 그는 “왜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힘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이재명 대선후보를 위해 피켓을 들 수는 없었다”고 답했다. 정치의 뜻을 이루지 못한 케이스가 더 많은데도 지방자치단체장에 도전하는 이유를 들어보기 위해 김희겸 전 경기도 행정1부지사에 이어 두 번째로 이재철 오산희망연구소장(전 고양부시장)을 만났다.

- 정년이 4년이나 남았는데 굳이 이번 선거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출마를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된 이재명 전 도지사 때문이다. 그 분이 대통령까지 된다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난 3년 반 동안에 특유의 조직문화 때문에 선후배들도 서로 못 만나고 돌아가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성남부시장 시절) 성남은 더 심했다. 성남은 이너서클은 승진하고 아닌 사람들은 배제되는 등 편가르기가 심했다.  당시 이재명 성남의 문화, 그리고 이재명 도청의 문화와 행태를 보면서 그 분이 대통령이 돼고 내가 기획조정실장이나 부지사가 되었을 때 아무런 말도 못하고 월급쟁이나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반대로 보면 이 후보의 조직 장악력이 뛰어났다고 볼 수 있지 않나?

“조직을 확 틀어쥐고 당근과 채찍으로 강하게 그냥 드라이브를 거는 게 이 후보 스타일이다. 살살 기면 엄청난 논공행상을 하고 안 들으면 엄청난 페널티를 준다. 공무원 조직뿐만 아니라 시·군과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일반 민간인 관계에서도 똑같다. 지금 시대는 팀플레이를 원한다. 팀플레이 가장 유능한 리더쉽은 많은 개체들을 아울러서 조직의 목표 집단의 목표를 끌고가느냐 하는 점이다. 이 후보는 원플레이에 가깝다. ”

- 이 후보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시장 출마를 결심했다는 것에 대해 시민들이 공감하겠나?

“재작년 1월에 고양시(부시장)로 옮겨서 코로나를 맞았고, 작년 9월까지 1선 현장에서 정말 난 최선을 다했다. 매일 노란 옷 입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심초사했다. 그런데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월급쟁이가 되고 에너지가 고갈되면서 번아웃됐다. 부시장이나 주무관들이나 하는 일이 똑 같았다. 그렇게 4년을 더 기다릴 것인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내가 하고 싶은 거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뒷담화 하면서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하는. 불만은 있는데 공무원은 자기 정치색을 띨 수가 없다. 이렇게 부지사가 된들, 아무런 권한이 없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서명이나 하는 부지사가 된들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냥 월급 줄 테니까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마 그런 분위기였다. 이건 부지사, 7급 주무관이나 똑같은 것 아니냐. 다만, 정치적인 동기가 없었으면 안 나왔을 것이다.”

- 정치적 동기라는 것은 무엇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이렇게 못할 줄 몰랐다. 나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다. 국민 8할이 문재인 대통령은 잘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청년들은 지금까지 계속 일자리 없어서 허덕거린다. 알바로 전전하고 있는데 알바 임금(최저임금)까지 올려서 편의점주 조차 힘들어 한다. 최근에 만난 숙대 교수님이 “지금 서울에 유명 백화점을 가보면 유명 브랜드, 해외 브랜드 사는 사람들이 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이다. 보복 소비 심리가 아니라 코인해서 돈 번 사람들이다. 연예인하고 코인해서 돈 번 사람 외에는 나머지들한테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진제공=오산희망연구소
사진제공=오산희망연구소

-  보편 내지 선별복지 논란은 인간의 근본적이며 전 세계적인 갈등요인이다. 

“보수쪽에서 프레임전쟁에서 졌다. 보편적이냐 차별적이냐 복지를 가지고 계속 끌려다니고 있다. 여기서 빨리 빠져 나와야 된다라고 본다. 일자리 등을 통해 성장을 통한 분배가 돼야지 10만 원씩 나눠주는 식의 복지는 희망이 없다.”

- 사회가 각박해지고, 분열과 갈등, 자유에 대한 규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갈등이 핵심 원인이다. 한국은 어떤 가치보다 정권이 그 위에서 군림한다. 나 같은 사람도 어느 정당에 소속되는 순간 주적(主敵)인 북한보다 더 나쁜 대상이 돼버린다. 그런 부분이 갈등을 유발한다고 본다. 현 정부는 적폐청산을 한다고 하면서 피아(彼我)를 구분한다. 수장이 되면 통합의 메시지를 주는 것이 맞다.”

- 정치권에서 영입 제의가 있었나?

“안민석 국회의원, 곽상욱 시장 모두 학교 선배라 잘 알고 있다. 재작년 말, 작년 초에 민주당 쪽에서 권유가 있었다. 그쪽 분들이 먼저 찾아 왔다. 오산에서 자기들이 싸 놓은 똥을 치워줄 새로운 인물을 바랬던 것 같아서 거절했다.”

- 민주당 쪽에서 먼저 움직였는데도 국민의힘을 선택한 이유는?

“이재명 후보 때문이다. 과연 이재명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내가 판에 낄 수 있을까 생각도 해봤다. 결론은 진짜 못하겠다. 그 짓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 국민의힘 인재 영입케이스인 것으로 알고 있다.

“국민들이 (정권교체에) 동의할 때 뒤에서 술안주 뒷담화만 하지 말고 한 번 목소리를 내보자. (지방 선거) 한두 달 남겨두고 내 스펙이 이러니 전략공천 부탁한다고 할 수 없었다. 정당하게 노력을 하고 시대적 흐름에 정상적으로 참여를 해서 부딪혀보자고 일찌감치 입당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나와서 보니까 낭떠러지는 아니더라.”

- 낭떠러지는 아니라는 것은 당선 가능성이 보인다는 의미인가?

“처음에 출마한다고 하니 국힘 내부에서도 계속 간을 봤다. ‘당신이 여기서 후보로 결정이 되면 내가 도울게’ 라는 말을 지난해 9~11월 사이 너무 많이 들었다. ‘당신을 믿고 배팅을 못하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저에게 접근한 분들이 다 지역 지분이 있었다. 접근한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시그널이다. 이분들을 다 안고, 새로운 분들도 영입하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 전 부시장은 1996년도에 합격 후 1997년 공직을 시작했다. 그는 공직 26년간 성남부시장시절 모란시장 개도축시설을 철거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 개 도축장 철거가 왜 인상에 남았나?

“수 백명의 철거용역원을 동원해 사람들을 밀어낸 것은 공직생활 중 처음이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고 할 정도로 매우 긴장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철거를 하려고 하면 업주들이 소송과 읍소, 물리력을 번갈아 하며 철거를 저지했다. 그러는 사이 8년이 흐른 골칫거리 사안이었다. 모란시장내 판매장 철거만이 핵심 문제가 아니었다. 그 뒤편 태평공원에 1년에 8만 마리를 도축해 수도권 전역에 공급하는 20년 이상된 불법 도축시설이 밀집해 있었다. 경찰서에 가서 이 곳을 철거한다고 하니 한 과장이 ‘할 수 있겠냐’고 비아냥 댈 정도였다. 은수미 시장도 난처해 하길래, ‘내가 다 책임지겠다’고 했다.”

도축단지 철거는 새벽 기습작적을 방불케 하듯 치러졌다. 새벽 5시 쯤 철거 용역 첫 차와 경찰이 들어가 기습 철거했고, 다음날 8시에 포크레인 등을 동원해 완전히 밀어버렸다.

충돌은 없었나?

“수 차례 예고를 했기 때문에 다행히 큰 충돌은 없었다. 할머니 한 분이 남아계셨는데 ‘어디로 가십니까’ 하니, ‘경기도 광주로 간다’고 해서 우리 직원들한테 거기 아들 내외랑 해서 다 모셔다 드렸다.”

사진 속 가장 큰 어린이가 이재철 전 고양부시장. 사진제공=오산희망연구소.

이 전 부시장은 인천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가 파산하면서 5살 때 오산으로 오게됐다"고 했다.

- 어린시절 매우 어려웠겠다.

“부모님이 다 이북 분이다. 아버님은 황해도 해주인데 6.25때 고등학교생 의용군에 끌려가게 되자 할머니가 야반도주 시켰다고 했다. 혼자 내려오셨다. 내가 태어난 곳은 인천이다. 5살 때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서점이 부도가 나면서 여기로 오게 됐다. 여기서 고생을 엄청 하셨다. 북오산에 대원화성이라는 공장부지가 있는데 전에는 남한농장이라고 하는 2~3만평의 꽃농장이었다. 그 곳에 취직해 사택에서 지냈는데, 농장이 부도가 나 사택에서 쫓겨났다. 외삼미동 땅을 임차해그 농장에 있었던 하우스 블럭을 깨 어머니하고 삼형제가 얼기설기 집을 지었다. 바람이 숭숭 들어오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집이었다. 초등학교때부터 공부를 곧잘 했는데, 당시 운명의 독지가 이정옥 선생님을 만났다. 그분이 고등학교 등록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줬다.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는 1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정말 잘했는데 3학년때 어떤 친구하고 자취를 하면서 완전히 망가졌다. 슬럼프도 겪었고 고려대마저도 떨어졌다.”

-재수했나?

“재수할 형편이 안돼 후기 대학인 경기대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굉장히 스트레스가 심했다. 서울로 대학 다니는 친구들이 주말만 되면 다 경기대학교 와서 공부한다고 도서관에 왔다. 지금은 변호사인 친구가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 어떻겠나고 제안해 그 해 11월 1톤 트럭으로 수원에서 가장 먼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계룡정사였는데 머리 빡빡 깍고 다시 시작했다. 3전4기 만에 고시에 합격했다.”

이 전 부시장은 최근 오산 한 빌딩에 정치 시발점인 오산희망연구소를 오픈했다.

- 오산의 문제가 무엇인가?

“안민석 국회의원이 5선으로 20년, 곽상욱 시장이 12년을 했다. 지금 시 지방재정 자립도가 28%다. 공무원 수당도 못준다. 후임 시장은 쓸 돈이 없어 빚 갚고 기존사업들 정리하기 바쁠 거다. 그런 점에 대한 자성론이 굉장히 높고 비판도 심하다. 아이러니하게 교통문제도 심각하고.”

- 오산 운암뜰 개발이 성남 대장동과 똑같다고 주장했는데.

“지금 운암뜰은 성남의뜰과 똑같은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주주 협약서, 업무지침서를 보면 거의 똑같다. 심각한 문제다. 토지 분양 이익금 40%를 시에 반납하고, 60%는 사업에 재투자하겠다고 하지만 큰 문제를 숨기고 있다. 화천대유처럼 분양과정에서 사업자가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구조다. 운암뜰에는 아파트를 지어서는 안된다.교통체증만 더 유발할 거다. 제2의 판교 테크노벨리 등 오산의 미래 먹거리가 들어가야 된다. 오산은 판교보다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 시장이 되면 판교보다 업그레이드된 모델들을 집어넣을 것이다. 지금도 기업 수요는 차고도 넘친다.”

-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하셨는데, 어떤 정치를 하고 싶은가?

“정말 바른정치를 하고 싶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하는 바른 정치 생활 정치.”

- 인생 좌우명과 새해 소망은 무엇인가?

“역지사지다. 공직자가 됐을 때 남에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자고 마음 먹었다. 정말 일 잘하는 오산시장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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